중국 당대문화우공 한원비림 창건인! 허유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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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당대문화우공 한원비림 창건인! 허유 이사장
  • 박호식 기자 sisanewsj@hanmail.net
  • 승인 2019.08.02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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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세(逝世) 문화예술 정신을 기리다”

 

허유 이사장
허유 이사장

 

[시사뉴스저널]박호식 기자=

이공도 선생, 한원비림(翰園碑林) 창건

“이공도 선생은 1927년 4월 5일생으로 중국 하남성 공의시 회곽진 서촌리에서 출생하였다. 1951년 3월 공무원으로 출발하여 공직사회에 오랫동안 봉직하였다. 1953년 8월 공산당 가입, 1957년 문화대혁명으로 우파로 피소, 1958년 공직에서 물러났다. 그러다가 1983년 6월 개봉지구농촌음식복무공사로 복직하였고, 1958년 6월 신체가 불편하여 공직에서 물러났다”

은퇴 후 개봉에 시서화의 뿌리를 내린 이 선생의 최고 업적은 숱한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1985년, 칠조고도(七朝古都)인 하남성 개봉시에 전 재산을 출자하여 한원비림(翰園碑林)을 창건한 것이다. 25년간 한원비림에 4천여 점의 비석이 새겨졌고, 자연경관과 인문경관을 융합하는 대형 문화예술보고가 세워진 것이다.

비림은 금석문을 통하여 선조들의 문화유산을 시공을 초월하여 만나게 해준다. 따라서 비림의 서화 작품들은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는 중요한 순간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중국 하남성 공의시에서 생산되는 돌은 비문을 새기기에 적합하다. 이는 이 선생이 한원비림을 창건하는 데 더없이 중요하게 작용하게 된다.

이 선생은 한원비림 창건으로 3천여 점의 금석문을 제작, 중국서법명원으로 선정되는 등 동방문화예술보고를 창건한 것이다. 중국한원비림 종신 주임, 한국비림 명예총재, 세계비림 이사장, 세계서법가협회 고문, 중국인민미술가협회 위원, 중국예술가연맹 고문 등 50여 단체 사회 직무로 활동하였다

또한 국가급 서법가 미술가였으며, 1995년 ‘하남성 10대 신문 인물’로 선정되었다. 중국 정부로부터 ‘당대문화우공’ 칭호를 수여받았으며 ‘전국 노동모범인’, ‘중국 모범가정 10인 가정’에 선정되어 크게 화제가 되었다.

중국 중앙정부의 등소평 주석, 호금도 주석, 강택민 주석, 이붕 총리 등 많은 지도자들이 한원비림을 방문하였으며, 일본의 해부준수(海夫俊秀) 총리 등 많은 해외지도자들도 한원비림을 방문하여 교류하였다.

"한원비림을 창건한 이 선생의 사적을 접하고 큰 감동을 받은 필자는 한국비림원을 설립하게 된다. 이렇게 하여 시작된 필자와 이 선생과의 인연은 한원비림과 한국비림박물관의 자매결연을 맺고 1998년 5월 서울에서 세계미술대전을 개최하였다. 이 행사에 한원비림 창건인 이 선생도 초청되었다”

한국비림원 후원과 지속적인 한중 교류… 유언으로 남겨

“이 선생과의 만남은 큰 감동으로 이어졌고, 결국 필자가 충북 보은군 수한면 동정리 옛 동정초등학교 자리에 2002년 5월 11일 한국비림원·한국비림박물관을 개관하게 했다. 역사 인물들의 사상과 업적을 비석에 각인(刻印)해 문화유산으로 보존하고 있는 비림박물관은 역사, 문화, 종교, 회화, 조각, 서예 등 시대별 문화상을 엿볼 수 있도록 1천여 점의 비(碑)를 전시하고 있다.

신라시대 김생 글씨로부터 신숭겸, 김부식, 최치원, 강감찬, 효종, 한석봉, 안평대군, 이항복, 김정희, 이순신, 손병희, 현대 국전자각 등 삼국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유명 문필가와 유명인사의 작품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이 선생은 국내외 저명인사들과 교류하면서 국제문화 교류에 큰 공헌을 하였다. 특히 필자를 도와 금석문화를 마련하는 데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주었다. 특히 필자를 자식으로 삼아 큰아들로 여겼다.

임종을 앞두고는 효천(孝泉), 효평(孝平), 효걸(孝杰) 삼형제에게 “허유는 너희들의 큰형이니 항상 존경하고, 한국비림원을 중국 한원비림에 버금가도록 변함없이 지속적으로 후원하라”는 유언을 남겼을 정도이다. 이 선생이 아들 삼형제 역시 이 선생과 마찬가지로 계속하여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계속적인 유대를 형성해 오고 있다.

이 선생의 서세 3주기를 앞두고 필자는 중국 한원비림 초청으로, 한원비림 이효평 대표와 곽연원 주임의 영접과 안내로 이 선생 동상에 헌화를 하고 만세산을 관람하였다. 이 자리에서 청소년 서화전시회에 대하여 의논하고, 10월 한중서화대전 개최를 합의하였다.

의(義)와 신(信)을 중히 여긴 이 선생은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사사롭게 쓰지 말고 청렴결백하고 근면 성실하게 살면서 모든 재산을 국가에 헌납하라”는 가훈을 한원비림 정문에 세우기도 했다.

이 선생이 세운 업적과 한중 문화예술 교류는 한마디로 ‘동방문화예술의 정수로서의 한중문화교류’ 정신이다. 이 선생의 정신과 실천은 면면히 이어져온 역사적인 한국과 중국의 문화와 예술교류 위에 각 분야의 교류를 집대성하여, 미래에는 동방문화예술이 전 세계의 정신적 지주로 발전하는 오리엔탈 문화의 창달을 목표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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